4-1주수일장로의 가정칼럼 2017-10-30T10:16:25+00:00

주수일장로의 가정칼럼

결혼의 목적

작성자
jinsegoladmin
작성일
2017-10-09 22:59
조회
36386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원합니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남자도 여자도 어른도 어린이도 다 행복을 원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행복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교육을 받고 일하고 돈을 벌고 결혼하고 자손을 낳고 양육하고 열심히 살아가는데, 이 모든 것이 결국은 행복해지기 위한 몸부림들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사회를 보면 정치, 경제, 교육들의 수많은 문제들이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인간의 행복을 위한 문제들입니다.
이것을 보면 행복은 인간의 삶의 이유이고, 삶의 내용이고, 삶의 목표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행복하지 못하다면 삶의 의미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행복하기 위하여 열심히들 살아가는데, 60대이상의 노인들에게 당신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았습니까? 하고 물어보면 “예” 하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 되지가 않습니다.
결혼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은 행복한 삶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결혼생활에서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래서 결혼 한지 20년 이상이 된 아내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당신은 결혼 생활이 행복하십니까?”
그런데 이 설문조사에서“예”하고 자신 있게 대답한 아내들은 불과 6%밖에 안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20년 이상이 된 사람들에게 물어 봤다는 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만일 1년 된 사람들에게 물어 봤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최소한 50%이상은 될 것입니다.  만일 1개월 된 사람들에게 물어봤다면 어떠한 결과가 나오겠습니까? 90%이상 될 것입니다.
결혼식장에서 나오는 신부들에게 물어보면 어떻겠습니까? 100%일 것입니다.
이 말은 결국은 모든 사람이 행복을 위하여 행복하게 결혼을 하는데 세월이 지남에 따라 실망을 하게 되고 20년이 지나면 결국 94%는 자기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습니까? 행복하다는 6%에 들 수가 있겠습니까?
왜 이렇게 되는가? 어떻게 하면 이러한 형태를 면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질문은 우리 인생의 행복을 위한 심각한 질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이 이렇게 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한 가지는 우리들이 행복의 그림자를 추구하며 산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 모든 물건에 실체와 그림자가 있듯이 행복에도 실체와 그림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눈에는 이 그림자가 더 진짜 같이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이 그림자를 잡으려고 열심히 좇아다니는데 잡히지가 않습니다.
그러면 이 그림자를 잡는 방법이 있습니까? 있기는 있습니다. 그것은 그림자를 좇아다니지 않고 실체가 어디 있는가? 하는 것을  잘 파악하여 그 실체를 붙잡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실체를 잡으면 그림자는 자동적으로 잡혀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삶의 현장에서는 어느 것이 행복의 실체이고 어느 것이 그림자인지 구별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결혼생활에서 결혼의 목적에 대한 실체가 무엇이고 그림자는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하여 한번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결혼의 목적은 첫째가 육신적인 정신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하는 것이고, 둘째가 생활의 편이를 위해서이고, 셋째가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가지기 위해서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결국은 내가 행복해지기 위하여 결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행복하기 위하여 결혼하는 것은 행복의 그림자를 잡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 결혼의 목적이 되면, 상대방은 결국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수단이나 도구가 돼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자기가 행복을 누리는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지 다른 사람의 도구가 되고 싶어 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서로 자기가 주인공이 되어 행복을 누리고, 상대는 자기에게 봉사하도록 하게 하기 위하여 상대방을 고치려고 하고 길들이려고 하며 주도권 쟁탈전을 벌이게 됩니다.
“장가가면 마누라를 다홍치마 때부터 꽉 잡아야 된다. 여자란 한번 기가 살면 다시 잡기가 아주 힘들단다.”
이것은 결혼식을 며칠 앞둔 아들을 놓고 흔히 아버지가 충고하는 말이니다.
그런데 시집 갈 여자의 집에서는 어머니에 의해 또 다른 얘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너 시집가면 남편을 신혼 초에 잘 길들여야 된다. 연애 때 기분이 살아있는 동안 잘 길들여야지 때를 놓치면 평생 고생을 한단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렇게 말하는 어머니 말에 아버지도 동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긴 시집가는 딸에게 시집가서 잘 잡혀서 남편을 잘 섬기고 생활도 시집 스타일에 잘 맞추어 살아가라고 얘기해주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요?
그러니까 신혼부부들은 결혼하고 나면 첫날부터 내가 잡히느냐 아니면 잡느냐, 길들이느냐 아니면 길들여지느냐 하는 것들을 가지고 심각한 갈등을 느끼게 돼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결혼의 목적이 잘못되어 있는 데서부터 기인합니다. 이렇게 잘못된 결혼의 목적의 그림자는 결국 결혼을 갈등과 투쟁으로 얼룩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결혼의 목적의 실체는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그것은 내가 사랑하는 배우자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혹자는 “결혼은 성인군자만 해야 하겠네! 나는 그렇게 할 자신이 없는데!” 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가정제도를 부부가 하나가 되도록 설계하셨기 때문입니다.
정신적으로 하나가 된다는 것은 부부가 정서적인 느낌을 같이하고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부부관계에서는 배우자를 행복하게 하면 그 행복해하는 배우자를 보면서 내가 더 큰 행복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부가 행복을 누리는  하나 됨의 원리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결혼제도에 대한 원리를 알고 나면 상대방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결혼을 해도 나에게 전혀 손해가 되지 않으니까 누구라도 이것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생활에서 하나 됨은 행복의 실체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 됨의 방법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을 하면 내가 먼저 배우자의 행복을 위한 도구가 되어주는 희생을 감수할 수가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진정한 나의 행복이 배우자의 행복 안에 있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그이가 행복할 때 나도 기쁘고, 내가 사랑하는 그이가 슬퍼할 때 나도 슬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진정한 나의 행복은 남을 대접하여 그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 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결혼의 목적의 실체입니다.
내가 약간 희생하더라도 배우자와의 관계를 아름답게 하면 결국은 배우자도 나도 다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행복해지기 위하여 배우자를 이용하려고한다면 관계는 깨어지고 결국은 자기도 불행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행복의 실체인 사랑의 관계를 잘 붙잡으면 내 결혼생활이 행복해질 것이고, 우리 삶의 가장 중심인 결혼생활이 행복해지면 인생도 자동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