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주수일장로의 가정칼럼 2017-10-30T10:16:25+00:00

주수일장로의 가정칼럼

둘이 한 몸을 이루라

작성자
jinsegoladmin
작성일
2017-10-09 23:00
조회
47758
먼저 독립되어 있는 두개체가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에 대하여 한번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이 말씀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하여 탈무드에 있는 예화를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느 날 몸은 하나인데 머리가 둘인 애가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이 애를 하나로 볼 것인가 둘로 볼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결론이 잘 나지를 않아 랍비에게로 데리고 갔습니다.
랍비도 처음에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한참 생각하더니 막대기를 하나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막대기로 애의 한쪽 머리를 세게 때렸습니다. 그랬더니 맞은 머리가 아야! 하면서 울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쪽 머리는 재미있다고 히죽히죽 웃었습니다. 그랬더니 랍비는 "이 애는 둘입니다"라고 판정했습니다. 그러면서 "만일 나머지 한쪽 머리도 아프다고 같이 울었더라면 하나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라고 얘기했습니다. 이 얘기는 하나냐 둘이냐 하는 것에 대한 판단의 기준을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부부가 아무리 하나가 된다고 할지라도 각각 독립된 개체이기 때문에 외형상으로는 따로 움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냐 둘이냐 하는 것의 판단기준은 외형적인 모양에 있는 것이 아니고 두 개체가 이해관계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해관계를 같이 하기 위하여서는 존재의 목적을 같이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해관계가 같아지면 결국은 느낌과 취미와 감정들도 같이 할 수 있게 되고 그 다음 마지막으로 욱체까지도 하나가 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영과 혼과 육이 하나됨을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다음 둘이 하나가 된다는 말의 또 다른 의미는 둘이 조화를 이룬다는 말입니다. 신발은 두 짝이 한 켤레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자연을 보면 꽃과 나비가 하나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배추와 배추벌레는 조화를 이루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쪽이 한쪽을 지배하고 먹어버리고 있습니다. 사실 배추벌레가 배추를 다 먹어버리고 나면 자기 자신도 존재할 수가 없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 배추벌레는 나비가 되면 더 이상 배추잎을 먹지 않고 꽃과 더불어 조화를 이루며 배추의 정받이를 도와줍니다. 이것은 배추벌레도 부활을 하여 수준 높은 존재로 다시 태어나면 더 이상 남을 해롭게 하지 않고 주위와 조화를 이루며 아르답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이것을 보면서 인간들도 현재는 배추벌레와 같이 남들과 싸우면서 살아가지만 ,거듭나서 부활하고 나면 나비와 같이 아름답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만물은 이렇게 하나로 조화를 이룰 때 옆에서 보기도 아름답고 자신도 보람과 행복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만물을 이렇게 창조해 놓으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은 하나됨을 이루어야 되는 이유에 대하여 한번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하나됨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원래 사람은 아담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빗대로 하와를 만드심으로 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둘에게 하나가 되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나를 두 개체로 갈라놓고 다시 하나가 되라고 하셨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하나가 하나로 있는 것 보다는 둘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좋아 보였고, 똑 같은 것 둘이 하나를 이루는 것보다는 다른 둘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 더 좋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독창 보다 이중창이 더 좋고, 같은 멜로디로 부르는 유니 송 보다는 다른 멜로디로 화음을 만드는 이중창이 훨씬 더 좋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도 단순한 유일신으로 존재하지 않으시고 삼위가 일체로 조화를 이루며 존재하고 계시는데, 이것은 우주의 큰 비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실 때도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둘이 한 몸을 이루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보면 하나됨은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어 인간에게 확산되었고, 또 우주 만물에게까지 확산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부가 하나가 되는 것은 단순히 인간부부가 하나가 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자녀를 포함한 가족 모두가 하나가 되어 행복해지고 민족이 하나가 되고, 인류가 하나가 되고, 지구의 우주만물까지 모두가 하나가 되어 행복해지는 것의 시작입니다.
다음은 둘이 하나가 되는 방법에 대해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하나가 되자고 하면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들은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가 되지를 못합니다. 남북통일을 하자고 하면 남한도 북한도 하자고 합니다. 또 야당 통합을 하자고 하면 다 좋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방법이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이기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와 나 사이에는 늘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가 되자고 합의를 하고 나서, 그러면 어떻게 할까하고 물으면 네가 내게 와야 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 상대는 "왜 내가 네게로 가냐? 네가 내게로 와야지."라고 말합니다. 결국 서로 자기는 그대로 있고 상대가 내게로 와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려서부터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도록 교육을 받습니다. 모든 교육이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누르고 일을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만드느냐 하는 데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적으로 똑똑하고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일수록 이혼율이 더 높고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래서 결국 인간들끼리 하나가 되는 방법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화목제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재자가 되어 주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중간에서 나를 오라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또 너를 부르십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그리스도께로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우리들에게 먼저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 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시고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한쪽 손은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한쪽 손은 인간의 손을 붙잡고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를 지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제물이 되어 주신 예수님은 인간과 인간 사이, 나와 너 사이, 또 부부 사이에서도 화목제물이 되어 주셔야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인간들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임으로 이루어집니다.
너와 나는 에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서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에수님은 우리를 보고 똑똑해지라고 가르치시고 않으시고 각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시었고, 한 알의 밀이 썩지 않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자기 에고를 강화시키지 않고 자기 포기를 교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분의 안에 들어가는 것만이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께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라고 하신 말씀은 바로 이것을 가르치신 말씀입니다.